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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제목 강석호 - Hubris Disembodied
일정 2011.12.03(Sat) ~ 2011.12.30(Fri) 시간 9 am - 6 pm
장소 갤러리보라 입장료 무료
연락처 Tel. 82.2.357.9149 홈페이지 www.gallerybora.com
주소
첨부파일 E51341_I.jpg
Hubris Disembodied

뜨거운 햇볕에 녹아 내린 날개처럼 덧없이 스러진 이카루스의 꿈. 태양에 닿고자 하늘 높이 오르고 올랐지만 한 순간 날개를 잃고 바다로 떨어져 포말처럼 사라진 이카루스. 그는 순리를 거역하는 무모함과 오만함의 상징인 동시에 이상을 좇아 운명과 겨루다 비극적 종말을 맞고 마는 낭만적 영웅의 전형이다. 이런 역설적 가치와 평가 들이 공존하기 때문일까. 이카루스는 ‘예술’하는 이들의 이상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친 자신감’, 자만’, ‘오만함’ ? 우리말은 차치하고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들로도 옮기기 힘들기에 라틴어 문화권에서도 있는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 등을 뜻하는 라틴어 hubris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그 사전적 의미 이면에 조금만 절제할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신중하고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자만, 오만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 안타까움, 그리고 무엇보다 애정이 살포시 감춰져 있는 역설적 단어이고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 hubris를 지난 5~6년 동안 시도했던 서로 다른 네 가지 작업들을 이어주는 키워드로 삼아 자신의 작가 정신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젊은 예술가 강석호의 시각적 비망록이 바로 \\'Hubris Disembodied\\'이다.

더 높은 목표, 더 많은 성취를 좇느라 뒤를 돌아보고 주변의 얘기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 현대인들. 더 높은 가격, 더 높은 명성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나를 알리고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과 소통에는 소홀한 오늘날의 예술가들. 강석호의 개인전 \\'Hubris Disembodied\\'는 그런 이카루스의 후예들을 은근히 짓누르는 예술적 심문이고 그들의 야무진 꿈의 그늘에 가려있던 것들을 들춰내 일깨우는 예술적 비판이자 자신의 나아갈 바를 밝힌 예술적 선언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처럼 되지 말자고, 그리 되면 아니 된다고 스스로를 벼리며 작업해 온 작가의 예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의 소산이다.
하지만 비판의식으로만 똘똘 뭉친 가시 돋친 질책이나 자만과 오만의 소치를 꾸짖기만 하는 성난 힐난은 아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애정을 담아 창작하고 해학적으로 갈무리한, 시적 깊이가 느껴지는 visual narrative이다. 보는 이를 사색과 자기성찰로 이끄는 이야깃거리들을 켜켜이 쌓는 작업을 photo-documenting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회화적인 동시에 조각적이지만 회화도 조각도 아닌, 설치이고 퍼포먼스이면서 사진이기도 한 다매체 예술이다. 그렇다고 경계를 허문다거나 ‘통섭적’으로 모든 것들을 아우른다는 미명 아래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뒤섞는 요즘의 ‘잡탕식 예술’로 오인해서는 안될 일이다. 비싼 값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작업, 얕은 꾀와 빤한 상혼으로 예술을 상품화 한 ‘감각적인’ 작업 들과 그 궤를 달리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오히려 그런 오만함과 뻔뻔함을 예술로부터 떨어내고 ‘진정성’으로 속이 꽉 찬 창작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작가의 솔직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다각적 모색이고, 그 흔적들의 콜라주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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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거창하고 그럴싸한 아이디어,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기법이나 귀를 홀리는 자극적인 ‘말빨’ 없이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신의 영역 #1\\'과 \\'신의 영역 #2\\'이다. ‘발견’도 ‘발명’만큼 경이롭고 감동적인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들이기도 하다. 아라비아 사막 한 가운데 오롯이 홀로 서 있는 나무. 그 나무의 처절하리만치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저만치 떨어진 곳에 모래를 뚫고 올라와 얼만큼 더 뻗어 나간 뿌리. 그리고 그 앞으로 지나가던 사막의 배, 낙타가 남겨놓고 간 가장 원초적인 삶의 흔적. 로켓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땅에 천착하는 생명의 신비는 여전히 경이로움을 날카로운 통찰력과 시적 감수성으로 담아낸 수작이 \\'신의 영역 #1\\'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토록 경이로운 생명의 힘과 의지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음을, 존재의 덧없음을 작가 특유의 시적, 지적 감수성의 필터로 걸러내 보여주는 작품이 \\'신의 영역 #2\\'이다. 이렇게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생명의 두 양상, 존재의 두 단계를 나란히 보여주는 이유가 무얼까. 아마도 답은 \\'신의 영역\\'이라는 제목에 있는 듯하다. 신의 상징이기도 한 태양. 그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삶과 죽음, 존재와 스러짐, 경이로움과 덧없음, 생명이라는 소우주와 태양계를 포함하는 무한의 우주. 이 모두가 신의 영역에서는 늘 있어 왔던 그저 그런 것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 말로 hubris로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임을, 태양에 도달하지 않고도 태양을 품을 수 있는 길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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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한 오브제들을 나무 테이블 위에 설치했다는 점에서 \\'신의 영역 #2\\'과 짝을 이루는 \\'고장 난 브레이크 #2\\'. 하지만 두 작품의 공통점은 외형적 설치 조건과 기법이 같다는 것뿐이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고장 난 브레이크 #2\\'에는 팔심 좋은 투수가 온 힘을 다해 뿌리는 직구 같은 정직한 힘과 비판의지가 실려 있다. 작가 특유의 ‘필터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설적으로 던지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어쩌면 \\'신의 영역 #2\\'와는 태생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민족과 국토의 분단, 남북의 군사적 대치, 종전이 아닌 휴전의 상황 등등 한국전쟁의 여파와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에겐 전쟁무기와 군사장비의 잔해들이 시적, 예술적 승화의 대상으로 비쳐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GOP ? General Out Post, 휴전선 상의 남방한계선을 뜻하는 용어로 일반전초라고도 한다 ? 에서 군생활을 할 때 비무장지대를 드나들며 채집해 둔 것들이 작품의 소재라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들을 펼쳐 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이데올로기의 맹신이 가져온 소통의 단절과 파괴적 충돌,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낳은 ‘어둠의 자식’ 대량살상무기의 사용, 그리고 그런 참화를 빚어낸 인간의 자만과 어리석음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고장 난 브레이크\\'라는 위트 있는 제목을 통해. 그리고 전쟁의 부스러기들 사이에 버터나이프를 슬며시 놓아두고 선글라스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도록 배치함으로써.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욕심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눈부신 물질문명을 일궈낸 인간지성에 대한 자만을 멈추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깨지고 부서져 뒤죽박죽되어 버리는 참담한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해 보라며 찡긋 윙크하는 듯한 선글라스에서 시선을 돌리면 \\'고장 난 브레이크 #6\\'가 눈에 들어온다. 언뜻 Marcel Duchamp의 유명한 작품 \\'In Advance of a Broken Arm\\'의 눈삽을 떠올리게 하는 \\'고장 난 브레이크 #6\\'. \\'Hubris Disembodied\\' 최고의 문제작이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부러지고 삭아버린 삽 한 자루에 \\'고장 난 브레이크\\'라는 제목을 붙인 작가의 의도는 과연 무얼까. 또 hubris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Duchamp의 눈삽을 두고 언어학적 근거를 들어 남근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고장 난 브레이크 #6\\'는 생산이라는 순기능을 할 수 없게 된 부러진 남근을 상징한다고 봐야 하는 걸까.
혹 남근이 상징하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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